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소련 국경분쟁 (문단 편집) ==== 중소국경회담 ==== 하지만 운명의 10월 20일에는 중국의 우려와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련 대표단은 평화적으로 도착하였고 저우언라이는 11월, 전국에 내려진 긴급상황을 취소하였다. 하지만 협상은 난황을 겪었다. 중국 측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전개했다. * 1. 지금의 국경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불평등조약[* [[아이훈 조약]](1858년 청-러시아), [[베이징 조약]](1860년 청-영국-프랑스-러시아)]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 2. 이들 조약을 기초로 현재상황을 고려하여 국경문제를 정하여야 하나 중국은 러시아와 체결하여 빼앗긴 영토를 요구하지는 않겠다. * 3. 이 조약을 위반하고 침략 점거한 영토는 원칙상 상대방에게 귀환시켜야 하나 쌍방은 평등협상에 의하여 서로 양보한다는 원칙 아래 당지 거주민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필요한 조정을 실시한다. * 4. 중소평등신약을 체결하여 중러불평등구약을 대체하고 국경을 정한다. * 5. 중소국경 문제는 평화적 담판에 의하여 전면적 해결을 하며 현상유지를 통하여 무력충돌을 피하고, 국경 분쟁지역에서는 스스로 철군하거나 들어가지 않는다. 허나 소련은 중소국경에 분쟁지역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중국이 제시한 쟁의지구의 개념은 소련에 대해 영토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따라서 쟁의지역의 영토를 소련 영토로 승인할 것을 요구하였다. 저우언라이는 소련이 베이징 공항 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고 협상을 중단하였다. 어쨌거나 세계를 3차 세계 대전으로 몰아넣을 뻔 했던 중소간의 분쟁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허나 마오쩌둥이 사망하던 순간까지 중국은 소련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하였다. 중국과 소련의 국경선은 평화가 온 뒤에도 불확실하다가 결국 소련이 해체된 뒤에야 국경 분쟁을 완전히 마무리지었다. 분쟁의 불씨가 되었던 전바오/다만스키 섬은 1991년, [[고르바초프]]의 합의로 국경협정이 체결되어 중국에 귀속될...뻔 했으나 그 직후 소련이 붕괴되는 바람에 승인되지 못하고 한참을 표류하였고 당사국이 소련 한 나라에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신생국들로 늘어나면서 매우 복잡해졌다. 결국 1996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이 고르바초프의 중러 동부국경협정을 준수하기로 합의하면서 겨우 협상이 재개되었고 2004년에야 최종적으로 국경협상이 완료되어 2005년에 중국 전인대와 러시아 국가두마에서 비준됨으로 최종적으로 국경이 확정되었다. 다만스키 섬은 넘겨받았지만, 중국측이 다른 곳에서 크게 양보해서 [[경상북도]]만한 영토가 러시아측으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두 국가의 국경선이 워낙 넓어서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강의 퇴적지대와 사막 같은 땅들로 이뤄져 있어 쓸모있는 용도로 사용될 여지도 적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국-러시아 국경은 워낙 길고 땅이 얼었다 풀리는 환절기에 국경이 불명확해지는 일이 계속 발생해서 양국 간에는 매년 국경 재획정을 위한 협의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러시아 지도를 매년 구입해서 보면 매년 어딘가 미세하게 조금씩 바뀌는 국경선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